브라질과 우르과이 그리고 마라카낭의 비극 | 월드컵 최악의 비극
- 축구 이야기/월드컵 이야기
- 2018. 6. 26. 00:30
월드컵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0명 중 8명은 바로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1950년 7월 16일 FIFA 브라질 월드컵 최종라운드 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60년이 훨신 넘게 지난 이 사건은 아직도 월드컵 시즌만 되면 많은 사람들의 입이 오르고 내린다.
당시에는 월드컵이 조별라운드로 진행 되었으며 브라질과 우르과이가 최종전을 앞두고 있었다. 브라질은 우르과이에 승점이 1점 앞서 있었기 때문에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가능 했고 우르과이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 했다. 그러나 당시 전력상으로 우르과이가 브라질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였고 브라질 축구협회와 전 국민들은 마지막 경기가 펼쳐지기 전에 이미 우승의 기쁨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자국에서 우승을 차지할 선수들을 위해 선수들의 이름이 세겨진 메달도 만들며 그들을 축하할 수많은 행사들을 준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브라질과 우르과이의 최종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르과이의 2-1 역전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는 199,954명 이라는 월드컵 역사상 최다 관중이 브라질의 우승의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입장하였는데 경기가 끝난 후 대부분의 관중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경기장에서 통곡 하였다고 하며 2명의 관중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2명의 관중이 총으로 그자리에서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는 이 충격적인 패배로 인하여 큰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 되었던 모든 행사가 취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브라질 전역에 조기가 계양 되었으며 심지어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 하였다. 뿐만아니라 브라질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며 당시 월드컵에 참가했던 모든 선수들은 자격을 박탈당하고 다시는 브라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최종전에서 두골을 실점한 브라질 대표팀의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평생을 브라질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람이라고 손까락질 받으면서 살게 되었고 그가 사망가기 직전인 2000년 "브라질의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최고형벌이 30년이지만 난 그경기에서 져서 50년을 죄인처럼 지냈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니 그가 1950년 월드컵 이후 얼마나 큰 고통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브라질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모두 지우기 위해 1950년대 까지 사용 되었던 모든 국가대표 유니폼을 소각하였고 노란색 상의과 파란색 상의로 교체 하였다고 한다. 바로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상징이 된 유니폼이 이 마라카낭의 비극 이후 정착된 유니폼이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의 역사가 깊어 갈 수록 많은 사건 사고들이 생겨났지만 마라카낭의 비극은 아직까지 월드컵 최악의 비극으로 손꼽힌다. 물론 수많은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월드컵 일지라도 이와 같은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것이다. 마라카낭의 비극 이후 벌어진 많은 월드컵 사건 사고중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1994년 미국 월드컵 에서 발생한 콜롬비아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사건을 꼽을 수 있겠다.
바로가기 :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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