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8888577 그리고 제리 로이스터
- 야구 이야기
- 2017. 10. 31. 05:30
필자의 고향은 부산이다. 2000년대 부산은 야구의 도시라고 불릴만큼 야구의 인기가 높았다. 저녁 6시가 되면 어디든 야구중계 소리가 들렸으며 택시를 타면 열에 아홉 택시는 라디오중계로 롯데자이언츠의 중계를 틀고 있었다. 2000년대 롯데자이언츠 퍁들에게 익숙한 문구가 있다. 바로 8888577 이다. 프로야구를 2000년대 이후부터 관심을 가진 팬들이라면 이 문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으나 200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프로야구에 관심을 가지고 시청 하였던 팬들이라면 이 문구를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2001년 부터 롯데자이언츠의 성적이다. 당시 8구단 체제의 프로야구에서 7년동안 가을 야구는 커녕 8888577 이라는 성적을 거둔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던 부산 팬들은 가을야구에 몹시 목이 말라 있었다. 2005년 5위를 거두었을 당시에 가장 가을야구에 근접 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양상문 감독이 젊은 시절에 감독직을 맞아 초반에 정말 프로야구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흥행 돌풍을 일으켰었다. 필자는 정말 그 당시에 롯데가 가을야구에 진출 할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시즌 중반 이후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10연패의 누렁에 빠지고는 5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2007년 시즌이 끝난 이후 구단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 졌다. KBO 최초로 외국인 감독인 제리로이스터 감독을 선임 한 것이다.
제리로이스터 감독이 부임 한 롯데는 당시 많은 기대를 받지는 못했다. 8888577 성적을 기록한 롯데에게 외국인 감독이 온다고 한번에 팀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로이스터 감독의 파격적인 자율야구는 팬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타 구단비 비교하여 절대적으로 적은 훈련시간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훈련보다 가족사 및 친분 관계를 더 중요시 하고 관리 하였던 로이스터 감독의 행보에 많은 팬들은 또다시 "꼴대"의 오명을 쓰는 것은 아닌지 생가 할 수 밖게 없었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 된 후 롯데의 행보는 예년과 완전히 달랐다. 지는것이 익숙했던 팀이 아니라 한게임 한게임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하는 팀으로 바뀌었으며 1번타자 부터 9번타자까지 빈틈이 없는 팀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 했다. 특히 팀 분위기가 완전 새로웠다. 선수들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것 처럼 보였다. 당시 강민호 선수와 로이스터 감독의 승리의 하마 세레모니는 당시 롯데자이언츠의 팀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첫해인 2008년 롯데의 인기는 대단했다. 8888577이라는 문구를 여기 저기 써들고 온 팬들은 올해 만큼을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시즌이 중반이 넘어서자 롯데의 가을야구를 의심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프로야구가 마치 롯데를 위해 존재 하는 것 처럼 대한민국이 롯데 열풍이였다. 올스타전 역시 롯데자이언츠 선수들의 무대였다. 올스타전 인기 투표의 상위권 을 모두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로 채워졌다. 당시 이대호, 강민호, 가르시아 선수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 야구팬들로 부터 사랑을 받았다. 부산 뿐만 아니라 잠실을 비롯한 전국 원정 야구장에서 롯데 경기가 있으면 홈 응원단 못지 않게 원정팬들이 찾아왔고 전국이 부산의 애국가로 불렸던 "부산 갈매기" 열풍이 이뤘다. 2008년 롯데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부임 첫 해에 가을야구에 진출하게 되었다. 당시 가을야구에 진출하게 되면 부산 팬들앞에서 부산갈매기를 부르겠다고 공약했던 로이스터 감독은 가을야구가 확정 된 이후 사직구장에서 허남식 당시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갈매기를 합창 하였다. 2008년 3위로 정규리그를 마친 롯데는 8년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였으나 4위를 차지한 삼성라이온즈에 3연패를 하며 단기전의 경험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며 시즌을 마쳤다.
2009년 롯데에는 홍성흔이라는 대형 스타의 합류로 2008년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로이스터의 자율식 야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미 가을야구 진출은 당연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로 롯데는 더이상 지는 야구에 익숙한 팀이 아니였다. 로이스터 감독은 2009년 2010년 까지 롯데자이언츠를 가을 야구에 진출 시켰다. 당시 감독 계약 기간이였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세시즌 연속 롯데자이언츠를 가을야구에 진출 시킨 것이다. 그러나 세시즌 모두 가을야구에서 단기전에 약한 면모를 보여주며 플레이오프에는 진출 하지 못하였다.
비록 세시즌 연속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즌을 마감 하여야 했지만 부산팬들은 로이스터 감독의 연임을 지지 하였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 한 이후 더이산 8888577 이라는 문구를 들고 야구장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타 구단으로 부터 "꼴대"라고 놀림 받는 일도 없어졌다. 오히려 롯데자이언츠의 분위기를 부러워 하는 사람들만 늘어 났다. 로이스터 감독이 있는 동안에는 롯데자이언츠는 부산팬들에게 프로야구 구단 그 이상이였다. 하루하루의 삶의 원동력이였고 부산의 자랑이였다. 그러나 가을야구에서 담기전에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였을까?? 팬들의 지지에도 불구하여 롯데자이언츠 구단은 계약된 3년을 체운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 수많은 롯데 팬들은 당시의 결정에 반발 하였으나 구단의 결정을 돌릴 수는 없었다.
로이스터 감독이 떠난 후 에도 2012년 까지 롯데의 가을야구 행진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롯데가 8888577 행보를 끊고 2012 시즌 까지 가을야구에 꾸준히 진출 할 수 있었던 것은 제리로이스터 감독의 부임으로 큰 전환점을 마련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프로야구 감독은 모두 김성근 감독 처럼 호랑이 감독과 같이 엄하고 무서운 감독으로만 생각 되었던 시절에 선수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고 선수들의 입장에서 자율야구를 추구했던 로이스터 감독의 시도는 당시 롯데가 전국적인 사랑을 받으며 가을야구 행진을 이어 가게 만든 시작이였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많은 부산 팬들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그리워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필자 또한 그때의 롯데 야구의 분위기가 가끔 그리워 진다.
시간이 지나서 많은 팬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그리워 할 수 있는 감독으로 남는 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당시 부산 팬들에게 "부산의 히딩크" 라고 불릴 만큼 영웅적인 일을 해 냈다고 할 수 있다. 훗날 언젠가 롯데의 역사를 되짚어 볼 날이 왔을때 제리로이스터 감독의 이름은 롯데에서 빠질 수 없는 큰 기록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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